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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장 선행

by 건강한 문군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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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은 성화의 확장이며 내용입니다. 본 신조는 선행의 공로적 개념은 막으면서 감사의 열매로서 선행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와 성격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상급문제도 공로적 상급은 배제하고 경건의 훈련으로써 상급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균형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항 선행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의 거룩한 말씀으로 명령하신 것일 뿐이지, 사람이 말씀의 근거 없이 맹목적 열심이나 어떤 선한 동기를 구실로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1항 선행의 정의와 기준

  • 본 신조는 13장 성화를 시작으로 5장 정도를 성화에 할애할 정도로 성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 선행의 정의와 기준 :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말씀으로 명령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화론에서 언급했듯이 성화는 단순한 도덕적 윤리적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전인격적인 변화입니다.
  • 맹목적 열심, 선한 동기 : 잘못된 열심과 성경적이지 않은 의도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파괴하는 무서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롬 10:2, 3)

 

2항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행하는 이 선행은 참되고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요 증거이다. 그리고 신자들은 선행으로 자기들의 감사를 드러내고, 확신을 굳게 하며, 형제의 덕을 세우고, 복음의 고백을 단장하며, 대적들의 입을 막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니, 그들은 하나님의 만드신 바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지으심을 받아,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 결국에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

2항 칭의와 신앙의 열매로써 선행과 선행의 목적

  • 2항은 선행이란 신앙의 열매이며, 선행의 궁극적인 목적도 하나님께 열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소개합니다.
  • 선행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행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 '이 선행으로 자기들의 감사를 드러내고'라는 고백처럼 이미 구원받은 자가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들이며,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리기 위한 열매들입니다.
  • 선행의 목적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아,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 결국에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선행 때문에'가 아니라 '선행을 위하여' 창조된 자이며, '거룩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 선행은 신자의 신앙을 확신케 하는 중요한 섭리적 수단이 됩니다. 또한 선행은 반대자들의 입을 막는 변증과 변호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선행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신조는 칼빈주의 구원론의 궁극적 목적인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란 방향으로 선행의 목적을 연결시킵니다.

 

3항 그들이 선한 일을 행하는 능력은 결코 자신들에게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성령에게서 나온다. 또한 선한 일을 행할 수 있으려면 이미 받은 은혜 외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따라 그들 안에 의지하고 행하게 하시는 동일한 성령의 실제적 영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이 특별하게 움직여 주시지 않으면 어떤 의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나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을 내어 그들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불일 듯하게 하여야 한다.

3항 선행의 궁극적 원인과 책임

  • 선행의 원인 : 선행의 궁극적 원인은 성령의 실제적인 효력 있는 적용과 인도하심에서 온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특히 원함과 행함까지 구별하여 신자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선행의 의도조차도 성령의 실제적 은혜 아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 선행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의무 : 신조는 선행의 궁극적 원인이 성령의 역사에 있다 할지라도 선행을 해야 하는 인간의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지 알 수 없기에 선행의 노력은 지금 바로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선행의 동기와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역사와 우리의 책임과 의무는 시간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적 인도하심을 통해서 신비롭게 일어나기에 우리는 선행의 필요성을 요구받는 즉시 참여해야 합니다.
  • 인간의 의지적 책임과 노력이 전적으로 수동적인 부르심과 칭의와 양제를 제외하고 신앙에서 19장 율법까지 구원의 필요적 원인이자 섭리적 수단으로써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가지는 부분이기에 우리는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4항 현세에서 가능한 최고도의 순종에 도달한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해야 할 일들 이상을 행한다든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 이상을 행할 수 없다. 이처럼 그들은 의무로 행하여야 하는 일들의 수준에도 크게 미달한다.

4항 불완전한 선행

  • 개혁파는 죄의 심각성과 전적 부패와 노예의지라는 죄관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도 없고 선행도 완전하게 성취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오직 불가항력적인 성령의 효력 있는 도움으로만 구원받고, 선행도 부활을 통하여 새 몸을 받기까지는 이 땅에서 수많은 죄의 유혹과 사탄의 공격에 넘어질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5항 우리는 가장 좋은 행위들로도 하나님께로부터 사죄나 영생을 받을 공로를 세울 수 없다. 곧 그 행위와 내세의 영광 사이에 큰 불균형이 있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도 무한한 간격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행위로써 하나님께 이득을 드리거나 이전에 범한 죄의 빚을 갚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행하였다면, 행해야 하는 의무를 행한 것뿐이요, 우리는 무익한 종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 행위가 선하다면 선행은 성령에게서 나오지만. 그 행위가 우리에 의해 이루어지면 그것이 우리의 행위인 만큼 심히 많은 연약과 불완전으로 더럽혀지고 뒤섞여 있어서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5항 선행으로 공로를 쌓을 수 없다

  • 우리 눈에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선행도 그 동기와 상태와 목적과 방식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궁극적 선행과 차이가 납니다. 신조는 이 차이를 '큰 불균형'이라고 하며, 더불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무한한 간격'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 무한한 차이 : 무한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신조는 두 가지를 추가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로 영향을 받는 분도 아니며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도 아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절대성을 추가합니다. 둘째로 피조물을 생각하면 "이전에 범한 죄의 빚을 갚을 수도 없다."라고 하여 죄의 참혹함을 추가했습니다.
  • 신조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선행의 능력은 하나님께 돌리고 선행의 부족함과 불완전함과 악한 행동은 우리 자신에게 돌리는 이중 구조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6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 각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납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선행 또한 그분 안에서 용납된다. 이는 그들이 현세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적으로 무흠 하다거나 책망할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안에서 그들을 보시면서 연약과 불완전이 많아도 진실한 마음으로 행한 선행을 용납하시고 상 주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6항 선행에 대한 상급이 있는가?

  • 상과 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인격적으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통치 및 섭리수단입니다.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 형벌이 없다고 해도 안 되며, 순종한 것에 대해서 상이 없다고 하면 하나님의 공의를 훼손하게 됩니다.
  • 이 상은 공로적 상급이 아니라 은혜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행위입니다. 신조는 이런 은혜적 상급을 성도들의 인격이 그리스도를 통해 받아들여졌기에 그들의 선행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된 것으로 표현합니다. 

 

7항 중생받지 못한 자들의 행위가 그 자체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일 수도 있고, 자신과 남에게 유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행위는 믿음으로 깨끗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말씀을 따라, 올바른 방식으로 행해진 것도 아니며 올바른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행위는 죄스러운 것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적합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그러함에도 그들이 선행을 소홀히 행하면 더 죄스러운 일이요 하나님을 더 노엽게 한다.

7항 불신자의 선행은 악이다

  • 신조는 선행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신자의 선행도 불신자의 선행도 결코 공로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 신조는 불신자의 선행에 대해서 3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원하시는 본질적인 선행이 아니라고 밝힙니다. 첫째는 신앙으로 정결하게 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말씀에 따라 올바른 방식으로 행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올바른 목적을 위해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불신자의 선행에 대한 결론적 평가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로 그 행위는 죄스러운 것(죄악)이라고 하여 매우 강경한 입장을 표현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중보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셋째로 은혜를 받기에 합당하게도 못하다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 불신자의 선행이 죄라면 더 악이나 행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 신조는 이 질문에 대해 게을리 하는 것은 더욱 죄가 되며 하나님을 더 노엽게 만드는 일이라고 답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악을 행하거나 선행에 게으르면 인간은 형벌을 받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근원적으로 선행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습니다. 

 

신원균 목사님의 책은 교보문고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해설집, 교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집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교재
신원균, 201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 33가지 성경 핵심교리, 디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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